만년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펜만큼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잉크’입니다. 색상이나 브랜드만 보고 고르기보다는, 잉크에 들어 있는 성분이 어떤 종류인지 알고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인 필기 만족도를 좌우합니다. 이 글에서는 만년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염료 잉크, 안료 잉크, 철분 잉크의 성분과 특성을 비교하고, 각각의 장단점과 관리 방법까지 깊이 있게 정리합니다.
염료
염료 잉크는 만년필 사용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잉크 타입입니다. 물에 녹는 수용성 염료 성분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되며, 대부분의 입문용 만년필에 기본 장착되는 잉크입니다. 필기 시 잉크가 펜 내부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와 막힘 현상이 적고, 필기감이 매우 경쾌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염료 잉크의 대표적인 강점은 바로 컬러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는 점입니다. 블랙이나 블루 같은 기본 컬러뿐만 아니라, 라벤더, 올리브, 버건디, 다크 브라운, 네이비 등 감각적인 컬러가 다양하게 출시되어 있어, 취향에 따라 개성 있는 필기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파이롯의 이로시즈쿠 시리즈, 플래티넘의 믹서블 잉크, 세일러의 스토리아 등이 유명한 염료 기반 잉크입니다.
또한 펜 세척이 매우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염료 잉크는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잉크를 자주 바꿔 쓰는 유저나 여러 색상을 번갈아 사용하고 싶은 사용자에게 적합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염료 잉크는 물에 닿거나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색이 흐려지거나 바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서 보존이 필요한 서류나 공문서 등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일기, 필사, 다이어리, 스케치 등에 알맞습니다.
이처럼 염료 잉크는 부드러운 필기감과 다양한 컬러를 즐기고 싶은 사용자에게 적합하며, 만년필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이 부담 없이 사용하기 좋은 선택입니다.
안료
안료 잉크는 고체 안료 입자를 잉크 용액에 미세하게 분산시켜 만든 수성 잉크로, 염료 잉크와는 달리 물에 잘 녹지 않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종이 표면 위에 코팅되듯 자리 잡으며, 내광성과 내수성이 뛰어나며 보존력이 매우 강한 잉크로 평가받습니다.
안료 잉크의 가장 큰 강점은 문서 보존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글씨가 물에 젖어도 번지지 않으며, 자외선에 오랜 시간 노출돼도 색이 바래지 않기 때문에, 행정 문서, 계약서, 원본 기록물 작성 등에 자주 사용됩니다. 또한 종이 종류에 따라 번짐이 적어 균일한 필기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료 잉크는 고체 입자가 펜 내부에 남을 수 있어, 잉크 막힘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펜을 장시간 사용하지 않거나 관리가 소홀하면, 입자가 굳어 펜촉이나 피드 내부에 고착될 수 있으므로, 정기적인 세척이 필수입니다. 특히, 미세한 펜촉을 사용하는 경우 막힘 확률이 더 높아질 수 있어, 세척 루틴을 함께 계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색상 선택 폭이 염료 잉크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실용성과 보존성을 우선시한다면 좋은 선택입니다. 플래티넘의 카본 블랙(Carbon Black), 세일러의 나노 잉크(Nano Ink), 로러 앤 클링너의 도큐멘트 잉크(Document Ink) 등이 대표적인 제품으로,
기록 보존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방수성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필기를 자주 하는 사용자에게 추천되는 잉크입니다.
철분
철분 잉크(Iron Gall Ink)는 중세 유럽에서부터 사용된 전통적인 잉크이며, 철 성분과 산성 성분이 포함된 수용성 잉크입니다. 처음 종이에 쓸 때는 회색빛을 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서 점점 진한 파랑 또는 흑청색으로 산화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분 잉크는 그 특성상 물과 시간에 매우 강한 내구성을 자랑하며, 수세기 전 작성된 문서들도 철분 잉크로 인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잉크는 감성적인 필기 경험을 원하는 사용자에게도 사랑받는데,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해가는 ‘산화의 미학’과 깊이 있는 필기 결과 때문입니다.
그러나 철분 잉크는 주의가 필요한 성분입니다. 산성 성분으로 인해 펜촉과 피드에 부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세척을 소홀히 할 경우 펜 내부에 산화물이 굳어 막힘 또는 손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철분 잉크를 사용하는 경우, 금촉이나 내식성 부품이 장착된 만년필을 사용해야 하며, 필기 후에는 빠르게 물 세척을 해주는 것이 필수입니다.
대표 제품으로는 로어앤클링너의 살릭스(Salix), 스카비오사(Scabiosa), 몽블랑의 퍼머넌트 블루(Permanent Blue) 등이 있습니다.
철분 잉크는 관리가 까다로운 대신, 감성적이고 오래도록 보존 가능한 필기 경험을 제공합니다. 필기 자체를 아날로그 감성으로 즐기고자 하거나, 중요한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사용자에게는 특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잉크는 단순한 소모품이 아니라, 만년필이라는 아날로그 도구의 성능과 감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입니다.